허구, 두

heogu 2025. 2. 22. 07:00

 

눈이 떠지지 않는다. 오른쪽 눈 한쪽만을 겨우 뜬 채 앞으로 걸어간다. 끝이 보이지 않는 숲 한 가운데에 있는 것 같다. 막막함에 눈을 잠시 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땐 오른쪽 눈이 아닌 왼쪽 눈이 떠졌다. 내 눈앞에 보이는 광경은 끝이 보이지 않던 반복의 굴레 같던 숲이 아닌 큰 마을의 입구 앞이었다.

 

그때, 두통이 일어나더니 오른쪽 눈 또한 떠졌다. 그리고 내 앞에 보이는 광경은 숲과 마을의 입구가 겹쳐 보이는 것이었다. 눈을 다쳐서 환상을 보는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옷의 천을 뜯어 오른쪽 눈을 감쌌다.

 

나는 마을 입구를 지나 마을 안으로 들어왔다. 그곳에 처음 들어갔을 땐 마을의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나를 반겨주었다.

 

료스케[대장] : 새로운 마을 사람이군요. 반가워요. 저는 이 마을의 대장을 맡고 있는 료스케(りょうすけ)라고 합니다. 이 마을에 대해 궁금하신 게 있으시다면 언제나 찾아오셔도 됩니다. 언제나 저는 마을 입구 오른쪽 첫 번째 집에 있을 테니 말이죠. 우선 마을 소개를 해드리죠. 이 마을은 ‘다이치(だいち)마을입니다. 말 그대로 '넓은 땅'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주인공] : 네. 혹시 제가 머무를 만한 곳이 있을까요?

 

료스케[대장] : 그럼요! 다이치 마을은 새로운 마을 사람들을 위해 매년 마을 사람이 머물 수 있는 집을 만든답니다. 원하시는 곳이 있으시다면 언제나 편하게 찾아와 주세요. 빈 집은 문 앞에 표시가 되어있을 테니 원하는 집을 찾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입니다. 정 혼자 다니기 힘들 것 같다면 저와 함께 마을을 돌아다니며 마을 사람들도 만나고 마을 소개도 해드릴 수 있습니다.

 

[주인공] : 집은 혼자 알아보도록 할게요. 그럼, 원하는 집을 찾는 대로 다시 뵈러 오겠습니다.

 

료스케[대장] : 알겠습니다. 언제나 환영합니다. 다시 한번 다이치 마을의 새로운 마을 일원이 되신 걸 축하합니다. 그럼, 나중에 또 봅시다.

 

'료스케'라는 자는 자신을 대장이라고 소개하였다. 젊은 미모에 큰 키, 자상한 말투, 얼핏 보기엔 20대가 된 지 얼마 안 된 청년 같았다. 나는 대장의 집을 지나 쭉 이어져 있는 작은 문 하나를 열고 마을 더 깊이 들어갔다.

 

마을 사람들은 나를 부담스러울 정도로 반겨주었다. 그들은 내게 친절한 말투와 웃는 얼굴로 마을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하였다. 나는 아무 말도 못 한 채 그들의 손에 의해 끌려갔다.

 

그들의 손에 의해 가게 된 곳은 작은 카페였다. 카페에 들어선 순간 깔끔한 실내장식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올 것을 알기라도 한 듯 청소를 한 것 같았다. 먼지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둥글게 의자가 한 바퀴 감아진 식탁 가운데 의자에 나를 앉게 하였다. 그러고는 나에 관해 물었다.

 

[마을 사람1] : 이름이 뭐예요? 우리 마을 사람들은 서로의 이름을 절대 잊어버리지 않기로 약속했어요. 당신의 이름도 기억할 거예요!

 

[주인공] : 아.... 저는....

 

나는 침묵 속에서 생각하였다. 그들에게 내 이름을 밝혀도 될지 말이다. 그들은 나의 답을 귀 기울여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실명을 밝히는 건 왠지 찝찝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들에게 가명을 말해주었다.

 

허구[주인공] : 저는 허구(虚構)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마유미[마을 사람1] : 와 '허구'라는 이름 정말 매력 있네요! 저는 마유미(まゆみ)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같은 다이치 마을 사람으로서 잘 지내봐요!

 

허구[주인공] : 네 그럼, 먼저 가 보겠습니다.

 

나는 다이치 마을 사람들과 통성명을 한 뒤 가장 먼저 자리를 나왔다. 내게 이름을 물었던 여자의 이름은 마유미(まゆみ)이다. 사람은 이름을 따라간다더니 그 여자는 다이치 마을 사람 중 유독 눈에 띄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외에도 꽃가게를 운영한다는 아야카(あやか), 시장에서 맏언니라고 불리는 토모코(ともこ), 과일가게와 생선가게를 운영한다는 사키(さき)와 미우(みう), 단체봉사를 하는 히마리 (ひまり)와 릿카(りっか), 아카리(あかり), 사람을 싫어하니 다가가지 말라는 마을 끝 집에 사는 코하쿠(こはく) 등 큰 마을인 만큼 마을 사람들도 많다고 말하였다.

 

근데 하나 이상한 점이라고 해야 할까? 마을 사람들은 모두 20대가 된 지 얼마 안 된 듯한 앳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키는 물론이고 피부 또한 좋았다. 늙음이라는 키워드가 이 다이치 마을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마을 끝 집에 산다는 코하쿠를 만나보고 싶었다. 가지 말라고 하면 더 가고 싶은 게 사람이 마음이니 말이다. 나는 곧장 마을 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른 집에 비해 유독 낡고 작은 집이었다. 초인종이 있었던 흔적만 남아 있는 것을 보아 코하쿠는 손님이 오는 것이 반갑지 않은 모양이다. 나는 문을 두드렸고 예상한 대로 그는 문을 쉽게 열어주지 않았다.

 

코하쿠[의문의 사람] : 누구....세요...? 처음 보는 얼굴인데....

 

문틈 사이로 들리는 목소리는 마을 사람들과는 달리 나이가 든 남자의 목소리였다. 목소리만 들었을 뿐인데, 남자의 나이를 알 것 같았다. 얼핏 듣기론 80대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나는 그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말하였다. 하지만 남자는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다고 말하였다. 마을 사람들이 찾아올 것이라며 불안에 떨었다. 나는 그에게 마을 사람들에게는 절대 이곳에 온 것을 말하지 않을 테니 문을 열어보라고 말하였다. 그때 남자는 안전장치를 풀더니 사람이 겨우 들어갈 만한 정도의 문을 열어주었다. 나는 그 집으로 들어갔다.